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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ADHD 진단부터 회사 생활까지 — 내가 겪은 것 전부adhd개발자이야기 2026. 8. 7. 09:12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나온 소견서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직장 내 상호작용이나 조직 적응 과정에서도 어려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요.
전문가가 제 실패를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예보로 적어둔 문장이었습니다. 그 줄에서 한참 멈춰 있었어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조금 달랐어요. 제가 얼마나 나아지든, 저를 부수는 조직과 저를 굴러가게 하는 조직은 여전히 따로 있을 거라는 것. 그렇다면 고칠 것과 고를 것을 나눠야 합니다.
저는 수습에서 잘렸고, 프로젝트에서 제외됐고, 자율출퇴근제 회사에서 매일 아침 "어디야?"라는 전화를 받았어요. 그런데 같은 뇌로 어떤 곳에서는 5일짜리 프로젝트를 8시간 만에 끝냈습니다.
뇌는 안 바뀌었어요. 바뀐 건 자리, 시간, 그리고 말이 다뤄지는 방식이었습니다.
ADHD 직장생활 신호 하나 — 자리
개방형 사무실은 저한테 여덟 시간짜리 감각 고문실이었습니다. 옆자리 키보드 소리, 등 뒤로 지나다니는 발소리, 누군가의 전화 통화, 형광등 아래 뒤섞이는 체취.
그걸 견디려고 모니터에 '시력 보호'를 명분으로 사생활 보호 필름을 붙였어요. 사원증을 빼면 어느 회사 사람인지 모르는 건물 옥상으로 도망쳐 10분씩 눈을 감았고요. 지금 보면 그건 근무가 아니라 잠수였습니다. 숨 참고 물속에서 일하다가, 옥상에서 잠깐 숨 쉬고, 다시 잠수하는 것.
아래에 이런 걸 적었다
· ADHD 직장생활 신호 하나 — 자리
· 신호 둘 — 시간
· 신호 셋 — 말
· 보너스 — 비효율을 강요하는 곳
· 어떤 회사는 그걸 뽑습니다
필요한 데로 내려가면 됨마지막 직장의 1인실이 달랐던 이유는 특별한 복지여서가 아니에요. 그냥 문이 하나 있었을 뿐입니다. 그 문 하나가 외부 자극의 수도꼭지를 제 손에 쥐여줬고, 그때부터 저는 견디는 사람에서 일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회사를 볼 때 조직도보다 평면도가 궁금합니다. 면접에서 "사무실 구조가 어떻게 되나요?"라고 묻는 건 충분히 정당한 질문이었어요. 저는 그걸 물어볼 생각조차 못 하고 입사했다가, 첫 출근 날 탁 트인 책상 바다를 보고 가슴이 내려앉는 걸 반복했습니다.
1인실이 없는 회사가 대부분이라면 차선은 원격 근무예요. 제 방은 태어날 때부터 1인실이니까요.
기준의 순서도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채용 공고에서 연봉과 기술 스택을 먼저 읽었어요. 지금은 근무 형태를 먼저 봅니다. 개방형 사무실에서 저는 하루의 절반을 소리 견디는 데 썼고, 그 절반은 급여에 반영되지 않는데도 매일 나갔거든요. 문 하나가 그 절반을 돌려준다면 그건 복지가 아니라 임금입니다.
신호 둘 — 시간
"자율출퇴근제입니다." 계약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어요. 코어타임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
코어타임을 지키며 출근하던 어느 날, 오전 10시에 팀장의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야? 왜 아직 안 왔어?"
규정 위반은 없었어요. 위반된 건 규정에 안 적힌 기대였습니다. "아무리 자율출퇴근이라도 그렇지, 회사는 9시까지 오는 거야."
그때 알았어요. 이 회사에는 문서로 된 제도와 실제로 작동하는 제도, 두 개가 따로 있다는 것을.
이 괴리는 ADHD 직장생활에서 특히 치명적입니다. 적혀 있지 않지만 모두가 아는 규칙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가 제일 못하는 일이거든요. 적힌 대로 행동하는 건 제일 잘하는 일인데, 적힌 게 거짓말이면 우리는 가장 성실하게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도의 이름이 아니라 운영의 증거를 봅니다. "자율출퇴근제가 있나요?"는 쓸모없는 질문이었어요. 다들 있다고 하니까요.
이렇게 물었어야 했습니다.
"팀에서 가장 늦게 출근하는 분은 보통 몇 시에 오시나요?"
제도는 거짓말을 해도 사례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
시간에 관한 신호가 하나 더 있어요. 과정을 보는 회사인가, 결과를 보는 회사인가. 저는 퇴근 시간을 일부러 늦게 기록했습니다. 야근 기록이 찍혀 있으면 사람들이 저를 바쁜 사람으로 여겼고, 그러면 안 건드렸거든요. 서글픈 연극이었죠.
앉아 있는 시간으로 평가받는 조직에서, 여덟 시간 몫을 두 시간에 끝내고 나머지 시간엔 방전되는 ADHD 뇌는 영원히 근태 불량입니다.
신호 셋 — 말
"엑셀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닙니다."
기술적으로 정확한 그 한 문장이 제 수습 기간을 끝냈어요. 팀장은 "고객사를 우러러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절반은 맞는 말이었어요. 상대의 도구 선택을 '멍청하다'고 표현한 건 사실 판단이 아니라 모욕이었고, 그건 어느 조직에서도 독입니다. 그 부분은 제 미숙함이 맞았고 수업료를 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조직의 선택이었어요. 어떤 조직은 "이 설계에는 문제가 있습니다"를 공격으로 듣습니다. 누가 말했는지, 몇 년 차가 말했는지가 내용보다 중요한 조직이요. 어떤 조직은 같은 문장을 데이터로 듣습니다. 맞으면 고치고, 틀리면 반박하고, 끝.
이걸 면접에서 구분하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제가 먼저 직설을 하나 던져보는 겁니다. 회사 기술 블로그에서 이상했던 점, 채용 공고에서 모순돼 보였던 부분을 정중하지만 정확하게 짚어보는 거죠.
면접관이 흥미로워하며 맞받아치면 살 만한 곳이고, 표정이 굳거나 화제를 돌리면 제가 수습을 못 넘길 곳입니다.
정직하게 적자면 저는 아직 이 방법을 면접에서 제대로 써본 적이 없어요. 몸으로 배운 원칙이지 몸으로 검증한 원칙은 아닙니다.
다만 가끔 되감아 봅니다. 저를 자른 그 팀장의 면접 자리로요. 그날 저는 묻는 말에만 답했고, "궁금한 점 있으세요?"에 없다고 했어요. 그때 하나만 던져봤다면 답은 두 갈래였을 겁니다. 그리고 저는 압니다. 그 자리에서는 후자였을 거예요. 몇 달 뒤 실제로 그 문장을 던졌을 때 돌아온 답이 "고객사를 우러러보지 않는다"였으니까요.
같은 정보인데 시점이 다르면, 그게 판결이 되기도 하고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보너스 — 비효율을 강요하는 곳
ERD를 파워포인트로 그리게 한 지시를 기억합니다. 전문 도구로 몇 시간이면 끝날 일을 사흘 동안 도형 정렬로 보내게 하고, 끝나자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라고 물었던 곳이요.
그때는 그 팀장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일부러 비효율을 강요하는 조직은 일의 결과가 아니라 복종의 과정을 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조직에서 ADHD를 가진 사람은 반드시 부서집니다. 우리 뇌에는 "왜?"를 끄는 스위치가 없거든요. 이 방법이 명백히 나은데 왜 저걸 써야 하는가 — 이 질문을 삼키는 데 남들 몇 배의 에너지가 들고, 삼켜도 얼굴에 드러나고, 드러나면 태도 문제가 됩니다.
면접에서 이렇게 물어보세요.
"최근에 팀의 업무 방식이 구성원 제안으로 바뀐 사례가 있나요?"
구체적인 답이 나오는가, 침묵이 나오는가. 그게 답입니다.
어떤 회사는 그걸 뽑습니다
여기까지는 피하는 법이었어요. 그런데 피하는 것 이상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팔란티어가 신경다양성 펠로우십이라는 채용 트랙을 열었어요.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운영되고, 진단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신경다양인이라고 여기면 지원할 수 있고, 통과하면 코어팀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열려요.
그 공고에서 찾는다고 명시한 특성이 뭐였냐면 — 통념 밖에서 사고하는 능력, 그리고 하이퍼포커스였습니다.
하이퍼포커스. 제가 야근 기록을 조작해가며 숨겼던 바로 그것. 통념 밖 사고. "엑셀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가 잘렸던 바로 그것.
한 조직이 결함으로 분류해 저를 밀어낸 특성의 목록과, 다른 조직이 채용 공고에 올린 특성의 목록이 겹치는 걸 봤을 때,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균형은 지킬게요. 팔란티어가 신경다양인의 낙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강도 높은 노동으로 유명한 회사고, 펠로우십 하나가 그 회사 문화를 증명하지도 않아요. 저는 그 회사를 다녀본 적도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가져가는 건 취업 정보가 아니라 관점입니다. 내 특성에는 고정된 값이 없다. 조직마다 다른 값이 매겨질 뿐이다.
그래서 저는
정직하게 적어둘 게 있어요. 이 신호들을 다 정리해놓고도 저는 한동안 어디에도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이력서 파일을 열었다가 그냥 닫는 날이 이어졌어요.
무서웠던 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붙는 거였습니다. 붙어서 석 달 뒤에 또 같은 자리로 돌아올까 봐요.
조직을 고르는 눈이 생겼다는 것과, 고를 조직이 실제로 앞에 있다는 건 다른 얘기였어요. 신호를 읽을 줄 알아도 목록에 남는 회사가 몇 개 안 되면 그건 지도가 아니라 막다른 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고를 판이 없으면 판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외주 마켓플레이스를 접고 직접 판을 만들었습니다.
회사에서 계속 걸리던 것

ADHD 개발자로 조직에서 반복적으로 걸렸던 문제들 넷 다 성격 문제라고 생각했다
소리를 못 견뎠다. 개방형 사무실에서 하루의 절반을 소리 견디는 데 썼는데, 그게 근무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는 항목이라는 걸 몰랐다 (그 얘기는 여기)
시간을 못 쟀다. "며칠 걸려요?"에 답을 못 해서 3배를 불렀고, 그게 틀릴 때마다 내 역량으로 기록됐다 (시간맹 얘기)
꽂히는 날엔 5일치를 8시간에 끝냈다. 그리고 그걸 숨겼다. 다음에도 그 속도를 요구받을까 봐
말이 직설적이라 관계를 몇 번 태웠다. 틀린 말이 오가는 걸 못 견뎠거든
나오고 나서 없어진 것

프리랜서가 되면서 사라진 문제와 그대로인 문제 왼쪽은 환경이 만들던 문제였다
소리는 완전히 해결됐다. 내 방은 태어날 때부터 1인실이니까
속도를 숨길 필요도 없어졌다. 5일치를 8시간에 끝내면 그냥 그날 일이 끝난 거다. 아무도 안 본다
직설적인 것도 문제가 안 됐다. 오히려 견적을 정확히 말하고 안 되는 걸 안 된다고 하는 게 팔린다. 그게 지금은 제품이 됐고 (그 얘기)
여기까지 보면 회사가 문제였던 것처럼 보인다. 절반은 맞다
그대로인 것
시간은 여전히 못 잰다
프리랜서가 됐다고 뇌가 바뀌진 않았다. "며칠 걸려요?"는 이제 고객이 직접 물어보고, 틀리면 월급이 안 나오는 게 아니고 다음 달이 걸린다. 더 나빠진 거다
그리고 흥미 붙는 일부터 손대는 것도 그대로다

관리자가 없어지면서 새로 생긴 문제 회사에선 팀장이 이걸 관리했다
견적서를 써야 하는 밤에 엉뚱한 리팩터링을 하고 있는 나를 몇 번이나 발견했다. 회사에선 팀장이 "그거 말고 이거요" 하고 잡아줬는데, 이제 아무도 안 잡는다
자유가 늘어난 게 아니라 관리자가 없어진 거다. 이건 프리랜서 글에서 잘 안 나오는 얘기다
그래서 구조를 바꿨다
고치는 걸 이십 년 해봤는데 안 됐다. 그래서 눈금을 바꾸는 대신 눈금이 필요 없는 구조를 만들었음

항목별 산출 근거가 들어간 견적서 감으로 부르던 걸 항목으로 쪼갰다
견적은 이제 내가 판단하지 않는다. 폼에 답하면 과거 실거래 분포에서 범위가 나온다. 내 그날 컨디션이 개입할 자리를 없앤 거다

유형별 고정 가격을 미리 적어둔 메뉴판 자주 나오는 건 아예 값을 박아뒀다
값을 미리 공개한 것도 같은 이유다. 매번 판단하니까 매번 다른 숫자가 나왔거든. 판단할 자리를 없애버렸다
결과가 나쁘지 않다

크몽 숨고 거래 후기 - 평점 5.0, 만족도 100%, 응답 30분 내 응답 속도가 빠른 건 다른 걸 못 미루는 것과 같은 특성이다
같은 뇌인데 결과가 다르다. 능력은 그대로고 환경과의 조합이 바뀐 거다
프리랜서가 답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하진 않겠다. 다만 조건이 있다

ADHD 개발자가 프리랜서로 갈 때 필요한 조건 이 셋이 없으면 회사보다 힘들 수 있다
수입이 끊기는 달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외주로 매달 벌어서 조달했는데, 그게 안 되면 만드는 중에 생활이 무너진다
그리고 관리자가 없다는 걸 감당할 구조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나한테는 그게 견적 자동화였고, 사람마다 다를 거다
먼저 밝혀둘 게 있다. 나는 의사가 아니고 이건 내 경험이다.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님
듣고 있는데 안 들어온다
집중을 안 한 게 아니다. 집중하려고 애쓰는 중에 딴 게 계속 들어온다

회의 중에 주의가 흩어지는 경로 하나하나는 작은데 합치면 회의 절반이 날아간다
옆 사람 노트북 소리, 창밖, 아까 하던 코드에서 못 고친 부분. 이런 게 계속 끼어든다
그리고 한 번 끊기면 되돌아가기가 어렵다. 다시 붙었을 땐 이미 다른 얘기를 하고 있고, 앞을 못 들어서 맥락이 안 맞는다
이건 개방형 사무실 얘기랑 같은 뿌리다. 배경으로 물러나야 할 게 안 물러난다
그런데 말하면 또 문제였다
반대쪽 문제가 이거다
틀린 말이 오가는 걸 못 견딘다. 회의에서 "엑셀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닙니다"라고 말해서 사람을 굳게 만든 적이 있다

회의에서 참을 때와 말할 때 각각 생기는 문제 둘 다 손해였다
내용은 맞았다. 근데 그 자리에서 그 말이 필요했는지는 다른 문제다
참으면 놓치고 말하면 관계가 상한다. 오래 이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음
회의록을 내가 쓰기 시작했다
바꾼 건 하나다. 회의록 담당을 자원했다

회의록을 직접 쓰면서 달라진 것 손이 바쁘면 딴 데로 안 샌다
받아 적으려면 계속 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딴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줄었다. 집중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손을 쓰는 쪽이 잘 먹혔다
부수 효과도 있었다. 회의 끝나면 남는 게 생겼다. 예전엔 기억에 의존했는데 그 기억이 원래 안 남는 사람이었으니까
말하는 것도 규칙을 만들었다
즉시 반박하는 걸 멈췄다. 대신 적어뒀다가 나중에 꺼낸다

회의에서 즉시 말하지 않고 미루는 규칙 하루 지나면 절반은 안 꺼내도 되는 얘기였다
적어두면 두 가지가 생긴다. 그 자리에서 안 터뜨리니까 분위기가 안 굳고, 하루 지나서 보면 꼭 말해야 할 것만 남는다
남은 걸 문서로 정리해서 보내면 오히려 잘 받아들여졌다. 말로 던질 때와 반응이 달랐음
지금은 회의를 거의 안 한다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 회의 자체가 줄었다. 이게 제일 큰 변화다

회의를 문서와 폼으로 대체한 구조 대부분은 회의 없이 끝난다
문의는 폼으로 받는다. 답을 고르면 그게 그대로 요구사항이 되니까 통화할 일이 줄었다
견적도 마찬가지다. 값을 미리 공개해두면 "얼마예요" 통화가 없어진다

통화 대신 폼으로 요구사항을 받는 화면 예전엔 이걸 통화로 했다
회의를 잘하게 된 게 아니라 회의가 필요 없는 구조로 옮긴 거다
회의를 해야 한다면
내 경험 기준으로만 적는다

회의를 견디기 위해 쓰는 방법 셋 다 특별한 게 아니다
받아 적으면 집중이 붙는다. 안건을 미리 받으면 어디쯤인지 놓쳐도 따라갈 수 있다. 반박은 하루 미루면 대부분 안 해도 된다
먼저 밝혀둘 게 있다. 나는 의사가 아니고 이건 내 경험이다
돌아오는 데 오래 걸린다
개발자가 방해에 약하다는 얘기는 원래 많다. 컨텍스트를 다시 쌓아야 하니까

방해받은 뒤 원래 작업으로 돌아가는 과정 문제는 마지막 단계다
나는 여기서 한 단계가 더 붙는다. 다시 앉아도 그 일에 다시 흥미가 안 붙는다
머리로는 뭘 하던 중인지 안다. 파일도 열려 있고 커서도 그 자리에 있다. 그런데 몸이 안 움직인다
그래서 딴 걸 하게 된다. 메일을 보거나 다른 코드를 열거나. 그러다 한참 뒤에야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회의보다 이게 더 컸다
회의는 시간표에 있으니까 대비가 된다. 인터럽트는 예고가 없다

예정된 방해와 예고 없는 방해의 차이 예고 없는 쪽이 훨씬 비싸다
하루에 몇 번 끊기면 그날은 끝난 거였다. 실제로 일한 시간은 여섯 시간인데 나온 건 두 시간치인 날들
이게 밖에서는 안 보인다.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까. 5일치를 8시간에 끝낸 날과 아무것도 못 한 날의 차이가 여기서 갈렸다
회사에서 했던 것들
돌이켜보면 이상한 짓을 했다

회사에서 방해를 막으려고 했던 방법들 대놓고 막을 수가 없으니 우회했다
헤드셋을 음악 없이 끼고 있었다. 소리를 막으려는 게 아니라 말 걸지 말라는 표시였다
일부러 회의실을 잡아놓고 혼자 들어가서 일했다. 예약이 잡혀 있으면 아무도 안 찾으니까
옥상에 올라가서 십 분씩 있다 오기도 했다. 이건 개방형 사무실 얘기에 적었다
전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었다. 환경을 못 바꾸니까 몸으로 피한 거다
지금은 구조로 막는다
프리랜서가 되면서 물리적 방해는 없어졌다. 대신 다른 게 왔다

비동기 구조로 방해를 줄인 방식 사람이 아니라 구조가 받는다
고객 연락을 실시간으로 안 받는다. 문의는 폼으로 들어오고, 진행 상황은 사이트에서 본다
"어디까지 됐나요" 연락이 오면 그때마다 흐름이 끊기는데, 그걸 물어볼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진행 상황을 사이트에서 직접 확인하는 구조 물어보지 않아도 보이면 안 물어본다
이게 배려처럼 보이는데 사실 내가 살자고 만든 거다
인터럽트를 줄이려면
내 경험 기준으로만 적는다

인터럽트를 줄이는 세 가지 방법 셋째가 제일 어렵고 제일 효과가 크다
시간을 막아두는 게 첫째다. 캘린더에 "집중"이라고 잡아두면 그 시간엔 안 부른다
돌아올 자리를 남겨두는 게 둘째다. 끊기기 직전에 하던 걸 한 줄 적어두면 복귀가 빠르다

작업을 끊기 직전에 남겨두는 메모 항목 이 셋만 있으면 처음부터 다시 안 읽어도 된다
셋째는 물어볼 필요를 없애는 거다. 어렵지만 이건 한 번 만들면 계속 간다
먼저 밝혀둘 게 있다. 나는 의사가 아니고 이건 내 경험이다
몰아친 다음에 오는 것
다음 날 앉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집중해서 몰아친 다음 날에 나타나는 것들 게을러진 게 아니다. 쓸 게 남아 있지 않은 거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 어제 짠 코드를 열어도 뭘 하려던 건지 다시 읽어야 한다
의욕 문제가 아니다. 하려고 앉아 있는데 안 되는 거다. 이게 하루로 끝나면 다행이고 며칠 가기도 한다

몰아친 날과 바닥난 날의 산출량 차이 앉아 있는 시간은 같은데 나오는 게 다르다
회사에선 이걸 숨겼다
몰아친 날을 안 알린 이유가 있었다. 다음에도 그 속도를 요구받을까 봐

회사에서 속도를 숨겨야 했던 이유 평균이 아니라 최고치가 기준이 될까 봐
그래서 5일짜리를 하루에 끝내놓고 나머지 나흘을 천천히 갔다. 밖에서 보면 그냥 5일 걸린 일이었고
그 얘기는 따로 적었다. 그때는 이게 요령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바닥나는 날을 그 나흘로 덮고 있었던 거다
문제는 이걸 계획에 못 넣는다는 것
언제 몰아칠 수 있는지를 내가 못 고른다

집중이 되는 날을 예측할 수 없는 구조 조건을 맞춰도 안 될 때가 있다
잠을 잘 잤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일이라고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안 중요한 일에 꽂히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다음 주에 이거 끝낼게요"가 어렵다. 다음 주의 내가 어느 쪽인지 모르니까
이게 며칠 걸리냐는 질문에 답을 못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평균으로 잡는다
지금은 최고치로 약속하지 않는다

최고치가 아니라 평균으로 일정을 잡는 방식 몰아친 날은 버는 날이지 기준이 되는 날이 아니다
일정은 안 되는 날을 포함해서 잡는다. 몰아친 날은 앞당겨진 거고, 그게 기준이 되면 다음번에 못 지킨다
견적도 마찬가지다. 예전엔 감으로 3배를 불렀는데 지금은 과거 실거래 분포에서 범위가 나온다. 내 그날 컨디션이 개입할 자리를 없앤 거다

감이 아니라 항목별로 산출한 견적서 몰아친 날의 나로 견적을 내면 안 된다
바닥나는 날에 하는 일
아예 안 하는 게 아니라 종류를 바꾼다

집중이 안 되는 날에 돌리는 작업들 머리를 안 쓰는 일을 그날로 미뤄둔다
새 기능을 짜는 건 못 한다. 대신 정리하거나 문서 쓰거나 밀린 답장을 한다
그래서 그런 일을 평소에 안 치우고 남겨둔다. 바닥난 날에 할 게 있어야 하니까
이게 요령처럼 들리는데, 사실은 안 되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걸 인정한 것에 가깝다
먼저 밝혀둘 게 있다. 나는 의사가 아니고 이건 내 경험이다
목록에 있는 건 눈에 띄는 쪽이다
자가진단 문항을 보면 대개 밖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묻는다
자주 묻는 것 가만히 못 앉아 있다 · 물건을 자주 잃는다 말에 끼어든다 · 순서를 못 기다린다교실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는 눈에 띈다. 조용히 딴생각하는 아이는 안 띈다
나는 성적이 나왔고 조용한 편이었다. 그래서 문항마다 "이건 아닌데" 하고 넘어갔다
내가 실제로 걸렸던 건 목록에 없었다

종합주의력검사 요약 보고서 - 영역별로 정상 경계 저하가 갈린다 돌아보면 걸리던 건 이런 쪽이었다.
- 시작을 못 한다. 해야 하는 걸 알면서 다른 걸 하고 있다
- 끝을 못 낸다. 멈추면 다시 못 붙을 것 같아서 밤까지 간다
- 시간이 안 세어진다. 십 분이랑 한 시간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 관심 있는 건 몇 시간씩 한다. 그래서 집중력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 줄이 함정이었다. 집중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조절이 안 되는 것인데, 자가진단은 대개 "집중이 어렵냐"로 묻는다
체크가 적게 나와도 가는 경우

검사 결과 설명 - 정확한 진단은 전문가 평가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개수보다 생활이 실제로 막히고 있는지가 기준이다.
반복되나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몇 년째인가 여러 곳에서 그런가 회사에서만 아니라 집에서도 그런가 실제로 막히나 지각 · 마감 · 관계에서 결과가 나오고 있나노력으로 눌러온 기간이 길수록 문항에 안 걸린다. 고치려고 20년을 쓰면 겉으로는 정상 범위로 보인다
결과를 어디에 쓰냐면
자가진단은 진단이 아니라 면담 재료다. 이게 제일 실용적인 용도다
병원에서 묻는 건 "ADHD 같으냐"가 아니라 "뭐가 어떻게 불편하냐"다
그래서 체크 개수보다 구체적인 장면 서너 개를 적어가는 쪽이 낫다.
나는 이걸 준비 안 하고 갔다. 그리고 ADHD가 아니라 다른 증상으로 병원에 갔다가 의사가 먼저 검사를 권했다
검사는 10만원이었고 12페이지가 나왔다. 그 결과지에도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전문가의 평가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자가진단에서 안 나왔다고 아닌 게 아니고, 많이 나왔다고 맞는 것도 아니다
문항이 나를 안 가리켰다
자가진단표 문항이 대체로 이렇다

자가진단표에 자주 나오는 문항과 조용한 쪽이 체크하지 못하는 이유 나는 왼쪽에 거의 다 아니라고 답했다
가만히 앉아 있기 힘든가. 손발을 계속 움직이는가. 지나치게 말이 많은가
나는 앉아있었다. 시험도 잘봤고
그러니까 체크가 몇 개 안 된다. 그럼 아닌가보다 하고 창을 닫게 됨

자가진단표만 보고 몇 년을 넘기게 되는 반복 구조 나는 이걸 몇 번 돌았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조용한 ADHD 증상은 문항 밖에 있다
내 경우는 흔히 조용한 ADHD라고 부르는 쪽이었다. 조용한 ADHD 증상은 이름 그대로다
밖으로 안 튀는 대신 안에서 벌어진다

겉으로 보이는 상태와 실제로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차이 왼쪽만 보면 아무 문제 없어 보인다
회의중에 몸은 앉아있는데 머리는 다른데 가있다든가. 사람 말의 절반을 다르게 알아듣고 몇 주 뒤에 안다든가. 시간이 몇 시간 지났는지 감이 안 온다든가
이런건 문항에 잘 안 나온다
나와도 "주의가 산만한 편인가요" 정도로 뭉뚱그려져 있어서, 나는 그걸 읽고도 아니라고 답했다. 산만하다는 말이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것 같지 않았거든
성적이 괜찮으면 더 안 걸러진다
이게 컸다

성적이 괜찮으면 어른들 눈에 앞엣것만 보인다 앞엣것만 보이면 뒤엣건 아무도 안 본다
결과가 나오면 과정은 안 본다. 시험 전날 열두시에 일어나도 점수가 나오면 아무도 안 물어본다
나도 안 물어봤다. 되고 있으니까
병원 검사는 좀 다르다
자가보고 설문을 쓰긴 쓴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자가진단표와 병원 검사가 묻는 것의 차이 오른쪽에서 갈린다
상담이 붙고 검사를 같이 한다. 그리고 어릴때 어땠는지를 묻는다
ADHD는 성인이 되어 생기는게 아니라 어릴때부터 있던 특성이 이어지는 거라 과거를 확인함
여기서 자가진단표랑 결정적으로 갈린다. 자가진단표는 지금만 묻거든
사람은 자기 현재 상태를 잘 모른다. 특히 오래 적응해온 사람일수록 더 모름
점수보다 문장이 쓸모 있었다
결과를 점수로만 읽으면 놓친다
내가 받은 소견서에는 점수 말고 문장이 있었다. 일의 순서나 우선순위를 정해 계획대로 실행하기 어렵고, 흥미가 붙는 일부터 먼저 처리하다 마감을 놓친다고
그 문장이 점수보다 훨씬 쓸모있었다

점수로 읽을 때와 소견 문장으로 읽을 때 얻는 것 뭘 바꿔야 하는지가 문장 쪽에 적혀있다
점수는 해당된다 아니다만 알려준다. 그건 시작점일 뿐임
지금 고민 중이면
자가진단표는 병원에 갈지 말지 정하는 데만 쓰면 된다. 결론 내리는 도구가 아니다

검사받으러 갈 때 챙겨가면 좋은 것들 어릴때 기록이 있으면 확인이 빨라진다
조용한 ADHD 증상은 체크가 몇 개 안 나온다. 그래도 일상에서 계속 같은 데서 걸리고 있으면 한번 확인해봐도 된다. 특히 밖으로 안 튀는 쪽이면 문항이 잘 안 잡음
나는 자가진단표만 보고 몇 년을 넘겼다. 그게 제일 아깝다
성적이 가려준 얘기는 따로 적었고, 진단받고 뭘 바꿨는지도 따로 있다
일반 번아웃이랑 다른 지점
검색하면 나오는 설명은 대체로 이렇다.
일이 과도하다 → 소진된다 → 회복이 필요하다내 경우는 일의 양과 상관이 없었다. 한가한 시기에도 왔고, 바쁜 시기에 멀쩡한 적도 있었다

일반 번아웃과 ADHD 번아웃의 발생 경로 차이 대신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많은 사무실에서 오래 버틴 뒤에 왔다
뭘 숨기고 있었냐면
마지막 회사에서 쓴 걸 세보면 이렇다.

회사에서 티 안 나게 일하려고 쓴 다섯 가지 장치 1인실 자극을 내가 통제할 수 있게 시간 견적 3배 시간맹을 들키지 않게 하이퍼포커스 저축 몰아친 걸 티 내지 않게 모니터 보호필름 화면이 노출되지 않게 옥상 익명 휴식 사원증 떼고 아무도 아닌 채로 퇴근 기록 늦추기 바빠 보이게여섯 개 다 일을 잘하려고 한 게 아니라 안 들키려고 한 것이다. 그 전략들은 따로 적어놨다
일은 여덟 시간이었는데, 그 여덟 시간 내내 다른 일을 하나 더 하고 있었다
그게 실제로 드는 비용

숨기는 데 드는 에너지가 쌓이는 구조 개방형 사무실에서는 하루의 절반을 소리 견디는 데 썼다
소리를 막을 수 없으니 참는 쪽으로 처리한다. 참는 건 공짜가 아닌데 근무시간에 안 잡힌다
퇴근하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하루 종일 두 가지를 동시에 했기 때문이다
나한테 온 순서

ADHD 번아웃이 진행된 순서 1 괜찮음 오히려 성과가 잘 나온다 2 집중이 안 켜짐 하이퍼포커스가 안 온다 3 사소한 게 큼 이메일 한 통을 못 연다 4 말이 거칠어짐 조절할 여력이 없어진다 5 나감 그만두거나 잘린다4번에서 문제가 터졌다. 기술적으로 정확한 한 문장 때문에 수습에서 잘린 적이 있다
그 말 자체는 평소에도 했을 말이다. 다만 평소에는 다듬을 여력이 있었고 그때는 없었다
번아웃이 말투로 먼저 드러났다. 나는 그게 성격 문제인 줄 알았다
회복이 아니라 설계를 바꿨다
쉬면 돌아오긴 한다. 그런데 같은 환경으로 돌아가면 같은 자리에서 또 무너졌다

회복 대신 환경을 바꾼 항목들 - 숨길 필요가 없는 자리로 옮겼다. 지금은 혼자 일한다
- 자극을 줄이는 게 아니라 통제권을 가진다. 소리를 막는 것보다 언제 끌지 정하는 게 중요했다
- 평균으로 약속한다. 최고치를 기준으로 잡으면 다음번에 못 지킨다
- 바닥난 날에 할 일을 남겨둔다. 새 기능은 못 짜도 정리·문서·답장은 된다
회사를 다섯 번 옮기면서 매번 "다음엔 다르겠지" 했는데, 다섯 번 다 비슷했다
아침마다 같은 일이 반복됐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어머니가 몇 번씩 부르는 소리가 꿈속으로 들어왔다
깨긴 깬다.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일어나는 동작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걸 오래 의지 문제로 알았다. 더 독하게 마음먹으면 되는 것, 알람을 더 많이 맞추면 되는 것
알람을 다섯 개 맞춰도 다섯 개를 다 끄고 다시 잤다. 끄는 건 기억도 안 났다
밤에 안 자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늦게 자는 것도 문제였는데, 이유가 졸리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하던 걸 못 끝낸다 중간에서 멈추면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다 멈추는 지점이 안 온다 "여기까지만" 이 계속 뒤로 밀린다 낮에 못 한 걸 밤에 한다 조용해지고 나서야 집중이 붙는다자기 싫은 게 아니라 끝내지를 못한 것이다. 하던 일을 손에서 놓는 게 잠드는 것보다 어려웠다
일을 못 놓는 습성은 회사를 그만둬도 안 사라졌다. 관리해주던 사람이 없어졌을 뿐이다
회사에서는 이게 지각으로만 보였다
원인이 뭐든 출근 시간에 못 오면 지각이다. 그건 맞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 지각에는 육아 때문일 거라는 가정이 붙었다. 나는 아이가 없었다
같은 행동에 다른 이름이 붙는 얘기는 따로 적었다. 원인을 잘못 짚으면 대응도 틀린다
시간을 못 지키는 게 수면-각성 주기 조절의 문제라는 건 진단을 받고 나서야 알았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나서
진단 뒤에 약을 먹었는데, 낮의 집중은 달라졌지만 밤에 잠들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건 흔한 얘기라고 들었고, 그래서 복용 시간을 조정하는 과정이 따로 있었다
약이 한 번에 맞는 게 아니라는 건 따로 적어놨다. 수면도 그 조정 항목 중 하나였다
혼자 조절할 문제가 아니다. 시간을 당길지 용량을 볼지는 진료에서 정하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것
고쳐진 건 아니다. 대신 아침에 의지를 쓰지 않는 쪽으로 바꿨다.
- 기상 시각을 협상 대상에서 뺐다. 몇 시에 자든 일어나는 시각은 고정이다
- 밤에 끝내는 지점을 미리 정한다. "이거까지"를 시작할 때 적어둔다
- 아침에 결정할 일을 안 남긴다. 입을 것, 할 일을 전날에 정해둔다
- 약 시간은 진료에서 맞춘다. 혼자 당기거나 미루지 않는다
일어나는 게 어려운 걸 게으름으로 부르면 20년을 고치려다 못 고친다
병원에 간 이유가 달랐다

ADHD가 아닌 다른 증상으로 병원에 가게 된 경로 매달 같은 시기 감정 기복 "생리전증후군이 심한 것 같아요" → 항우울제 처방 → 의사가 ADHD 검사를 권함 → 진단호르몬 주기 쪽으로 먼저 갔다. 여성이 ADHD로 바로 가는 경우가 드문 이유가 여기 있다
어릴 때 안 걸러진 이유
교실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는 눈에 띈다. 조용히 딴생각하는 아이는 안 띈다

여성 ADHD가 어릴 때 안 걸러지는 구조 나는 또래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특히 어려웠다. 그 세계는 미묘했다
누가 누구와 더 친한지 오늘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지 어제 한 말이 오늘 왜 문제가 되는지그 좌표계를 못 읽었다. 그런데 그건 "사회성이 부족하다"로 번역됐다
성적이 나쁘지 않으면 더 안 걸러진다. 공부를 잘하면 ADHD가 안 걸러진다는 얘기도 따로 적었다
회사에서는 이렇게 왔다
증상이 성별 기대와 겹치면 해석이 달라진다.

같은 행동이 다르게 해석된 사례 복장 — 이사님도 슬리퍼에 반바지로 다녔고 다들 각자 입었다. 내가 후드티를 입은 날에는 이런 말이 돌아왔다
"오늘 늦게 일어났나요?"같은 옷인데 나한테만 붙는 해석이 있었다. "자유롭게 입으세요" 뒤에 "우리가 생각하는 적절한 범위 내에서" 가 숨어 있었고, 그 범위가 성별에 따라 달랐다
출근 시간 — 정시에 못 오면 육아 때문일 거라는 가정이 붙었다. 나는 아이가 없었다
시간맹은 ADHD 증상인데 "여성 직원이니까 육아" 로 번역됐다. 원인을 잘못 짚으면 대응도 틀린다
증상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진단이 바꾼 것
증상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이름이 붙었다

진단 전후로 달라진 해석 진단 전 노력 부족 · 사회성 문제 · 게으름 진단 후 조절이 안 되는 것이지 안 하는 게 아니다이십 년 동안 고치려고 했던 것들이 사실은 고쳐지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걸 알고 나서야 환경을 바꾸는 쪽으로 갔다
회사에서 티 안 나게 쓴 방법들도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그게 번아웃의 원인이기도 했다
짚어둘 것
- 진단이 늦는 건 증상이 약해서가 아니다. 눈에 띄는 형태가 아니라서다
- 다른 증상으로 병원에 가게 된다. 나는 감정 기복이었다
- 호르몬 주기와 겹쳐 보인다. 그쪽으로 먼저 가는 경우가 많다
- 성별 기대가 해석을 바꾼다. 같은 행동에 다른 이름이 붙는다
- 진단은 증상을 없애지 않는다. 이름을 붙여줄 뿐이다
눈금이 두 개였다
성인이 되고 받은 보고서에는 지능과 사회적응이 따로 적혀 있었다.
지능 130대 · 최우수 수준 사회적응 거기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소견서 문장은 이랬다. "실제 사회적응 기능은 지적 능력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양상"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봤다. 새로운 정보가 아니어서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몸으로 겪던 걸 누가 한 줄로 적어준 것에 가까웠다
높은 쪽이 낮은 쪽을 가린다

종합주의력검사 결과지 - 개인정보는 가림 문제는 두 값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높은 쪽만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전교 1등이었다. 반장이나 회장을 매년 했고 상장이 쌓였다
그런데 어른들 칭찬에는 늘 꼬리표가 붙었다.
"공부는 잘하는데 ―"뒤에 오는 말은 매번 달랐지만 뜻은 하나였다. 똑똑한데 어딘가 미덥지 못하다는 것
성적표는 나를 증명해줬는데,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는 데는 성적표 말고 다른 게 필요했다. 그게 뭔지는 끝내 몰랐다
왜 성적은 나왔냐면
관심 있는 주제에 몇 시간씩 붙어 있을 수 있었다. 그게 시험 범위와 겹치면 점수가 나온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집중력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알고 있었다
안 되는 것 시작하기 · 멈추기 · 관심 없는 걸 붙잡기 되는 것 관심 있는 걸 몇 시간씩집중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조절이 안 되는 것인데, 자가진단은 대개 "집중이 어렵냐"로 묻는다. 그래서 목록에서 나를 못 찾았다
격차는 성적이 안 나올 때 드러난다
중학교에 가서 전교 1등에서 30등으로 떨어졌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어려운 건 여러 과목 숙제를 관리하고, 시험 일정을 기억하고, 긴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쪽이었다
이해력으로 버티던 구간이 끝나고 관리 능력이 필요한 구간이 오면 그때 갈린다
그 뒤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영재원을 3년 다녔고 자사고에 갔고, 그러고 삼수를 했다
짚어둘 것
- 눈금이 두 개면 둘 다 봐야 한다. 높은 쪽만 보면 낮은 쪽이 안 보인다
- 성적은 이해력으로 나올 수 있다. 관리 능력과 다른 축이다
- "공부는 잘하는데"가 신호였다. 그 뒤에 붙는 말이 진짜였다
- 성적이 안 나오는 구간에서 드러난다. 과목이 늘거나 일정이 길어질 때다
- 진단이 늦으면 노력으로 눌러온 기간만 길어진다. 나는 스물다섯이었다
성인 ADHD 특징이 회사에서는 이렇게 들렸다
진단받기 전에 실제로 들었던 말들이다

회사에서 실제로 들었던 평가 다섯 가지 다섯 개 다 사람 성격에 대한 말이다
"성의가 없다." 약속에 늦었을때. 늦으려고 늦은적은 한번도 없는데 나가야 할 시각이 내 안에서 다른 눈금으로 흘렀다
"성실하지 않다." 마감을 놓쳤을때. 나는 그 시간에 여덟시간을 일했다. 다만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 뿐;; 하고싶은걸 함
"기복이 있다." 5일치를 8시간에 끝낸 날이랑 30분도 못 앉아있던 날이 같은 주에 있었으니까
"예민하다." 개방형 사무실에서 계속 지쳐있었을때
왜 본인은 모르냐면
비교할 기준이 없어!!!!!!!!!

자기 상태를 판단할 기준이 없어서 생기는 결론 남의 머릿속을 못 보니까 이렇게 정리된다
나는 태어날때부터 이 뇌로 살았다. 다른 사람 머릿속이 어떤지 모르고
그러니까 "다들 이 정도는 힘든데 나만 못 버티나보다"가 된다
성적이 괜찮으면 더 안 보인다;;; 전교 1등(^^)을 하면서 반성문을 쓰던 앤데, 어른들 눈에는 앞엣것만 보였음
번역표를 만들어봤다
진단받고 나서, 내가 들었던 말이랑 실제로 벌어지던 걸 나란히 놓아봤다. 성인 ADHD 특징이라고 부르는 게 왼쪽에 어떻게 옮겨 적히는지 보고 싶었음

들은 평가와 실제로 벌어지던 일을 나란히 놓은 표 왼쪽은 결과고 오른쪽은 원인이다
회사에서는 왼쪽만 보인다. 오른쪽을 설명하려고 하면 변명처럼 들리고
그래서 나도 한동안 설명을 안 했다. 어차피 안 믿을 것 같아서
왼쪽을 고치려고 이십 년 썼다
안 늦으려고, 안 미루려고, 말을 부드럽게 하려고

의지로 고치려 할 때 반복되는 패턴 며칠은 된다. 그게 문제다
며칠은 되니까 "하면 되네"가 된다. 그러다 피곤한 날 원위치
컨디션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는 안전장치는 안전장치가 아니다
그래서 오른쪽을 건드렸다
시간 감각을 못 믿으면 예측을 시스템에 넘기고, 신호를 못 읽으면 말이 필요없는 구조를 만들고

특징마다 고치는 대신 구조로 넘긴 방식 나를 안 바꾸고 판단할 자리를 없앤다
고치는건 이십년 해서 안 됐는데 없애는건 됐다
뭘 어떻게 바꿨는지는 따로 적었다 (ㅇ요기도봐주세여열심히적음 ㅎ)
다만 내 몫도 있었다 ㅜㅜ
이건 짚고 가야 함

특징으로 설명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경계 오른쪽은 진단으로 안 지워진다
상대의 도구 선택을 멍청하다고 표현한건 사실 판단이 아니라 모욕이었다. 그건 신호를 못 읽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무례했던 거고
진단은 설명이지 면죄부가 아니다. 설명이 생겼다고 상대가 받은 게 없어지진 않음
같은 말을 여러 곳에서 듣고 있으면
그 평가가 맞을 수도 있다. 나도 내 몫이 있었으니까. 전부 성인 ADHD 특징으로 설명되는건 아니다

같은 평가가 여러 곳에서 반복될 때 생각해볼 것 한 곳이면 궁합이고 여러 곳이면 다른 얘기다
근데 같은 말을 여러 회사에서 반복해서 듣고 있다면, 그건 그 회사들 문제도 아니고 성격 문제만도 아닐 수 있다
나는 그걸 확인하는 데 서른 가까이 걸렸다;;
알고 난 뒤로 제일 크게 바뀐건 나를 탓하는 데 쓰던 힘을 다른 데 쓰게 된 거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갈 만했음
휴학이 있는데 자퇴를 했다
반수를 하려고 서울과기대를 나왔다.

휴학과 자퇴 중 되돌릴 수 있는 쪽과 없는 쪽 휴학 학적이 남는다 돌아갈 때 복학하면 된다 자퇴 학적이 없어진다 돌아가려면 재입학 심사를 받아야 한다나는 자퇴를 골랐다. 돌아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지금 보면 이상하다. 수능을 또 망칠 가능성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 경우를 안 세웠다
되돌릴 수 있는 쪽이 있는데 되돌릴 수 없는 쪽을 골랐다. 그게 더 깔끔해 보였다
실제로 수능을 망쳤고 자퇴한 학교에 재입학을 신청했다. 휴학이었으면 그냥 복학이었다
회사에서도 똑같이 했다
몇 년 뒤 회사에서 수습 기간에 잘렸다.
이유는 기술적으로 정확한 한 문장이었다. 그 얘기는 따로 적어놨다

자퇴와 해고에서 반복된 같은 판단 구조 대학 조율 없이 나감 휴학을 안 봄 회사 조율 없이 말함 수습에서 잘림둘 다 중간 단계를 안 거쳤다. 맞는 말을 하거나 확실하게 나가거나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린 게 억울하다는 게 아니다. 두 번 다 같은 자리에서 걸렸다는 것
진단받고 나서 보인 것
ADHD 진단은 성인이 되고 한참 뒤에 받았다. 약 먹으면 끝인 줄 알았던 얘기는 따로 있다

진단 후에 다시 본 판단의 패턴 진단이 해준 건 증상을 없애준 게 아니라 패턴에 이름을 붙여준 것이었다
중간 옵션이 잘 안 보인다 결정을 미루는 게 결정하는 것보다 괴롭다 그래서 끝까지 가는 쪽을 빨리 고른다미루는 게 힘들어서 빨리 끝내버리는 것. 나는 이게 결단력인 줄 알았다
결단력이면 좋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두 번 다 안 좋았다. 그러면 결단력이 아니다
그래서 자퇴가 답이 아니라는 건 아니다
이 글이 하고 싶은 말은 그만두지 말라는 게 아니다.

자퇴를 결정하기 전에 확인할 세 가지 내가 그때 안 한 걸 적으면 이렇다.
- 되돌릴 수 있는 선택지를 먼저 적어본다. 휴학·전과·복수전공·학점교류가 있다
- 잘 안 됐을 경우를 한 줄로 써본다. 나는 수능을 또 망칠 경우를 안 썼다
- 오늘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지 확인한다. 마감이 진짜인지 내가 만든 건지
셋 다 결정을 늦추는 장치다. ADHD한테는 이게 제일 어렵다
미루는 게 괴로워서 빨리 끝내려는 거라면, 그건 판단이 아니라 회피에 가깝다
실제로 도움이 됐던 건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에 하루를 넣는다. 그날 안에 결정 안 해도 되는 건 다음 날로 넘긴다
하루 지나서도 같은 결론이면 그건 판단이 맞다. 하루 만에 바뀌면 그건 그날 기분이었던 것
그리고 나가는 것보다 조율이 싼지 먼저 센다. 자퇴는 재입학 심사를 받아야 하고, 휴학은 복학 신청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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