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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일치 일을 8시간에 끝내고, 그걸 숨겼습니다
    adhd개발자이야기 2026. 8. 9. 08:29

    5일 걸린다던 프로젝트를 8시간 만에 끝낸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 직장에서였고 과장이 아니에요. 그날 아침 어떤 스위치가 켜졌고, 점심을 걸렀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집중 속에서 퇴근 무렵에 일이 끝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자랑하지 못했어요. 숨겼습니다.

    ADHD 하이퍼포커스라고 부르는 그 상태입니다. 관심이 꽂힌 대상에 극도로 몰입하는 특성이요. 겉에서 보면 초인적인 생산성처럼 보입니다.

    먼저 밝혀둘게요. 저는 의사가 아니고 이건 제 경험입니다.

    왜 숨겼냐면

    남은 4일치 시간을 들키지 않으려고 견적은 처음부터 3배로 불렀고, 퇴근 시간은 최대한 늦게 찍었어요. 그렇게 확보한 여유는 집중이 꺼진 날들을 버티는 데 조용히 썼습니다.

    5일치 일을 8시간에 해낸 사람이, 그 사실을 감추는 데 나머지 에너지를 쓰고 있었던 거예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8시간이 언제 또 올지 저도 몰랐거든요.

    ADHD 하이퍼포커스에는 스위치가 없습니다

    이게 핵심이고 이게 약점입니다.

    켜고 싶다고 켜지지 않아요. 마감이 코앞이어도, 팀장이 재촉해도, 제가 저를 아무리 다그쳐도 안 켜지는 날은 안 켜집니다. 반대로 꺼야 할 때 꺼지지도 않아요. 한번 꽂히면 밥때를 넘기고 퇴근 시간을 넘겼습니다.

    제 집중은 제 것이면서 제 것이 아니었어요.

    임상 기록에는 그 8시간이 다른 이름으로 적혀 있습니다. 특정 활동에 몰두하는 경향. 항목의 제목은 '제한된 관심사' 였어요.

    처음 읽었을 때 두 번 읽었습니다. 제 직업이, 십 년 넘게 저를 먹여 살린 그 일이, 의학적으로는 관심사가 제한되어 있다는 증거로 분류돼 있었거든요.

    화가 나진 않았어요. 틀린 말이 아니니까요. 다만 아이러니가 오래 남았습니다. 같은 성질이 진료실에서는 '제한'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력서에서는 '전문성'이라는 이름을 답니다. 성질은 하나인데 이름이 두 개예요.

    회사가 못 담은 건 ADHD 집중력의 총량이 아니라 낙차였어요

    회사가 원한 건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매일 비슷한 양을 해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제 5일치를 해냈다는 사실이 오늘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의 변명이 되지는 않았어요.

    평가는 평균이 아니라 최저점으로 이루어집니다.

    "어제 그렇게 잘하더니 오늘은 왜 이래?" 그 질문 앞에서 "제 집중은 제가 켜는 게 아니라서요"라고 답할 수는 없었어요.

    낙차의 반대편도 기록에 있습니다. 저는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는 걸 힘들어했어요. 몰입이 안 켜진 날에는 의자에 붙어 있는 것 자체가 과업이었습니다. 화면은 켜져 있고 몸은 들썩였어요. 회의가 길어지면 다리를 떨었고, 별 용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5일치를 8시간에 해내는 사람과 30분을 못 앉아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회사는 이해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건 조직 탓만도 아닙니다. 예측 가능성 위에 굴러가는 시스템에게 예측 불가능한 부품은 실제로 곤란해요. 저는 그 곤란한 부품이었습니다.

    지금은 집중이 켜진 날 파이프라인을 깝니다

    ADHD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스위치가 생긴 것도 아니에요. 그건 안 변했습니다.

    변한 건 딱 하나예요. 집중이 폭발하는 날,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하느냐.

    회사에서 저는 그 시간으로 '그날의 일'을 해치웠습니다. 그러고는 남는 시간을 숨겼어요. 지금은 그 시간으로 시스템을 깝니다.

    매번 손으로 치던 진행률 업데이트를 어느 집중 폭발기에 아예 명령 하나로 굳혀놨습니다. 배포도 빌드부터 롤아웃, 안정화 대기, 실제 화면 확인까지 한 커맨드로 묶었어요. 그 파이프라인을 설계하던 날의 저는 분명 꽂혀 있었습니다. 단계마다 붙어서 파고들었어요.

    그런데 결과물은 정반대 성질을 가집니다. 이제 배포에는 아무 집중도 필요 없어요.

    차이가 보이시나요. 회사에서 그 집중의 산출물은 그날 하루로 소모됐습니다. 지금은 같은 집중이 코드로 남아요. 8시간의 집중이 8시간어치로 끝나지 않고, 그 뒤의 모든 반복을 대신합니다.

    꺼진 날은 그 위에 얹혀 갑니다

    ADHD 집중력이 안 켜지는 날은 여전히 옵니다. 화면을 열어놓고 한 줄도 못 나가는 날,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날. 그건 안 사라졌어요.

    달라진 건, 그런 날에도 일이 완전히 멈추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AI에게 일을 병렬로 시킵니다. 깊은 판단이 필요한 건 추론이 강한 쪽에 맡기고, 확인하고 뒤지는 일은 여러 갈래로 동시에 띄워요.

    집중이 바닥인 날에 필요한 건 여덟 시간의 몰입이 아니라 방향을 던져주는 몇 분입니다. 몇 분짜리 지시는 안개 낀 머리로도 됩니다. 그 몇 분 뒤에 결과가 돌아와요.

    컨디션이 좋은 날의 제가 깔아둔 파이프라인 위를, 컨디션이 나쁜 날의 제가 얹혀 갑니다.

    낙차는 그대로예요. 낙차가 만드는 공백을 시스템이 메울 뿐입니다.

    회사에서는 그 공백을 저 혼자 가려야 했어요. 부풀린 견적과 늦게 찍은 퇴근 기록으로요. 지금은 가리지 않습니다. 메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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