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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설적이라 잘렸는데, 지금은 그게 제 제품입니다adhd개발자이야기 2026. 8. 13. 09:15
성인 ADHD 진단을 받기 한참 전, 저는 회의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엑셀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닙니다."
이 문장으로 잘렸어요. 이거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수습 기간 조기 퇴사를 결정지은 장면 한가운데에 이 문장이 있었습니다.
고객사는 엑셀 파일을 '데이터베이스'라고 불렀고, 단순 집계를 '데이터 분석'이라고 불렀어요. 저는 그걸 그냥 넘기지 못했습니다.
틀린 말을 한 건 제가 아니었는데, 잘린 건 저였어요.
ADHD의 직설적 성향이라고 부르는 그것입니다. 오래 저는 이걸 고쳐야 할 결함으로만 봤어요.
무례가 아니라 절반의 정보였습니다
그때는 세상의 부조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그날 회의실에서 작동한 건 무례함이 아니라 하나의 감각이었어요. 애매한 것이 애매한 채로 놓여 있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감각. '엑셀'과 '데이터베이스'라는 두 단어가 다른 걸 가리키는데 같은 것처럼 쓰이는 순간, 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렸습니다. 그 경보를 끄는 방법은 하나뿐이었어요. 정확한 문장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
제 임상 기록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비유적 표현이나 간접적 언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미묘한 감정 표현이나 사회적 뉘앙스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요.
이 두 문장을 그날 회의실 위에 겹쳐놓으면 상황이 다르게 보입니다.
고객사가 엑셀을 '데이터베이스'라고 부른 건 아마 비유였을 거예요. 우리 데이터가 다 여기 들어 있다는 뜻의 편한 말이요.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걸 비유로 알아들었고, 저만 문자 그대로 들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들으면 그건 그냥 틀린 문장이고요. 저는 틀린 문장을 고쳤어요.
동시에 제가 놓친 게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흐르던 공기요. 담당자의 표정이 굳는 순간, 팀장이 저를 한 번 쳐다본 그 짧은 눈길. 그런 게 하나의 신호로 묶여 "지금은 멈춰야 할 때"를 가리키고 있었을 텐데, 저는 그 신호를 못 받았어요.
정확히 말하면 신호가 있었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니 그날 저는 무례를 저지른 게 아니라 절반의 정보만 가지고 방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
이 구분은 변명이 못 됩니다. 그냥 설명이에요. 무례는 마음먹기에 따라 안 할 수 있지만, 안 들리는 건 마음먹는다고 들리지 않으니까요.
ADHD 직설, 말투를 고치려고 했고 참는 법만 늘었어요
퇴사하고 한동안 저는 이 성향을 고쳐야 할 결함으로 봤습니다.
말을 아끼는 법, 돌려 말하는 법, "좋은 지적이십니다만"으로 시작하는 법. 배우긴 했어요. 조금은 늘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경보를 끄는 법이 아니라 경보를 참는 법이었어요. 참는 데는 에너지가 듭니다. 그래서 피곤한 날에는 어김없이 원래대로 돌아갔어요.
컨디션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는 안전장치는 안전장치가 아닙니다.
바뀐 건 성향이 아니라 배치입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알게 된 게 있어요. 같은 문장도 겨누는 방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됩니다.
그날의 그 문장을 회의실에서 고객 면전에 말하면 모욕이 돼요. 그런데 같은 정확성을 계약서 조항에 쓰면? 견적서의 부가세 분해 항목에 쓰면? 코드의 타입 정의에 쓰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습니다.
문서는 얼굴이 없어서 무례를 모릅니다. 계약서는 "착수금 50%, 3분할 시 30%"라고 말해도 정 없다는 소리를 안 들어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애매하게 쓰인 계약서가 나중에 사람 사이를 찢습니다.
애매함을 못 견디는 ADHD 뇌는 명세를 쓰는 뇌예요
이게 이 글에서 제일 하고 싶은 말입니다.
스펙 문서에서 가장 치명적인 죄는 무례함이 아니라 애매함이에요.
- "적당히 빠르게"라고 쓰인 요구사항
- "협의 후 결정"이라고 쓰인 대금 조항
- "상황에 따라"라고 쓰인 보수 범위
회의실에서 저를 잘리게 한 바로 그 결벽이, 이 문장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결벽이 지나간 문서에는 해석의 여지가 안 남아요.
그래서 정찰제로 갔습니다
외주 시장의 기본값은 애매함입니다. "견적은 상담 후에", "가격은 프로젝트마다 달라서", "일단 전화 주시면".
이 애매함이 의뢰인에게는 불안이고, 개발자에게는 협상 카드예요. 저는 그 카드를 버렸습니다.
상품 가격을 그냥 다 적어놨어요. 부가세 별도라는 것까지 명시해서요. 견적 폼은 연락처를 받기 전에 금액 범위부터 보여주는 순서로 짰고, 그 범위는 감이 아니라 실제 계약 데이터의 분포에서 뽑았습니다. 계약서는 표준 템플릿으로 고정했고요.
이것들은 전부 형태만 바꾼 그날의 문장입니다.
"엑셀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닙니다"와 "이 상품은 부가세 별도 40만 원입니다"는 같은 뇌에서 나와요. 애매한 걸 애매한 채로 두지 못하는 뇌요.
다른 점은 하나뿐입니다.
앞의 문장은 사람의 자존심을 겨눴고, 뒤의 문장은 문서의 빈칸을 겨눴어요.
혹시 같은 걸로 부딪히고 계시다면
직설 때문에 계속 부딪히신다면, 말투 교정이 답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거 몇 년 했는데 피곤한 날마다 원위치였어요.
대신 그 정확성이 쓰일 자리를 찾아보시는 걸 권합니다. 명세, 계약서, 문서, 테스트 케이스, 프롬프트. 사람의 얼굴이 없는 곳이요.
거기서는 같은 성질이 결함이 아니라 그냥 일 잘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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