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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적서 써야 하는 밤에 엉뚱한 리팩터링을 하고 있었습니다adhd개발자이야기 2026. 8. 23. 13:31
견적서를 써야 하는 밤에 엉뚱한 리팩터링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이 아니고요.
저는 의사가 아니고 이건 제 경험입니다. 이 글로 자가진단하지 마세요.
미룬 게 아니었어요
ADHD 미루기를 게으름으로 설명하면 이상해집니다. 저는 그 밤에 놀고 있지 않았거든요. 여덟 시간 동안 코드를 고쳤어요. 아무도 시키지 않은 코드를.
그러니까 하기 싫어서 안 한 게 아니라, 시작이 안 걸린 겁니다.
제 임상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일의 순서나 우선순위를 정해 계획대로 실행하기 어렵고, 흥미가 붙는 일부터 먼저 처리하다 마감을 놓친다고.
흥미가 붙는 일부터. 그게 정확한 묘사입니다. 손이 그쪽으로 먼저 가요.
밖에서는 게으름으로 보입니다
이게 제일 억울했던 부분이에요.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밖에서 보이는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여덟 시간을 일했는데 마감은 안 지켜져 있어요. 그럼 결과만 보는 사람한테 저는 논 사람이 됩니다.
회사에서 이건 아주 짧은 문장으로 요약됐어요. 성실하지 않다.
ADHD 미루기가 게으름과 다른 지점이 여기입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해요. 저는 계속 뭔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걸 설명하려고 하면 변명처럼 들려요. 그래서 대개는 그냥 사과했습니다.
계획표는 늘 새로 만들었습니다
시험 기간마다 계획표를 만들었어요. 과목별로 시간을 나누고 색깔까지 칠했습니다.
그 계획표대로 공부한 날은 한 번도 없었어요.
계획을 못 세우는 게 아닙니다. 계획은 잘 세워요. 재밌거든요. 새 계획표를 만드는 건 새로운 일이니까 손이 갑니다.
실행이 안 되는 거죠.
ADHD 미루기는 지속이 아니라 진입 문제였어요
그래서 알게 된 게 하나 있어요. 저한테 문제는 지속이 아니라 진입이었습니다.
일단 시작하면 오히려 못 멈춰요. 밥때를 넘기고 새벽까지 갑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안 걸립니다.
그래서 지금은 첫 단계를 우스울 정도로 작게 쪼갭니다.
견적서를 쓴다가 아니라 파일을 연다. 코드를 짠다가 아니라 함수 이름 하나를 적는다. 이 정도로요.
파일만 열어도 그다음은 대체로 굴러가더라고요.
제일 잘 먹힌 건 이거였어요
하기 싫은 일을 시스템 밖으로 아예 빼버리는 것.
견적서가 그랬습니다. 저는 견적서 쓰는 걸 계속 미뤘거든요. 그래서 쓰던 양식에 맞춰 자동으로 나오게 만들어놨어요. 이제 대화를 붙여넣으면 문서가 나옵니다.
미루는 습관은 안 고쳐졌어요. 미룰 일이 없어진 겁니다.
계약서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돈 얘기 꺼내는 게 어색해서 계속 미뤘는데, 지금은 서명하면 인보이스가 알아서 나갑니다.
ADHD 미루기를 고치려는 건 오래 해봤습니다
시간 관리 앱을 깔고, 뽀모도로를 돌리고, 할 일 목록을 만들고.
며칠은 됩니다. 그러다 한 번 무너지면 앱을 지웠어요. 그리고 저를 탓했습니다. 이것도 못 하냐고.
몇 번 반복하고 나서 방향을 바꿨어요. 내가 매번 잘 해내야 하는 구조 자체가 잘못됐다고요.
같은 걸로 힘드시면
제 경우 기준으로만 말씀드릴게요.
미루고 있는 일을 하나 골라서, 그 일의 첫 동작이 뭔지 적어보세요. "보고서 쓰기"가 아니라 "문서 열기" 수준으로요. 그게 30초 안에 되는 크기면 대체로 걸립니다.
그리고 계속 미뤄지는 일이 매달 반복되는 종류라면, 그건 습관 문제가 아니라 설계 문제일 수도 있어요. 없앨 수 있는지 먼저 보세요.
저는 고치는 걸 이십 년 했는데 안 됐습니다. 없애는 건 하루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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